콘크리트 유토피아 다음 소희 그리고 세월호 감상문 2023. 10. 22. 18:41

회사에서 보여줘서 동료와 함께 봤다. 예상 가능한 내용과 연출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이 감탄과 반전이 없이도 좋은 영화인것 같다.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힘들어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기어코 두 시간을 앉아서 봤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마음편히 볼 수 없었는데, 다 보고 나니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보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인면수심

문명이 무너진 상황이지만, 문명 이전의 시대였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아파트도, 자동차도, 보일러나 통조림도 없던 때라면 말이다. 경험이 있고 지식이 있기에 문명의 재건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이뤄질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은 재건보다는 있다가 없어진 것을 쟁탈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면수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내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전개 내용이다. 영화의 내용은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에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 부분이 핵심이다.

설마 아니겠지 싶은 일들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영화 속 내용이 단순한 픽션으로 쉽사리 잊혀지지 않고, 영화관을 벗어나도 불쾌함으로 남는다.

사람이 죽었다구요

함께 본 회사 동료와 나의 공통점은 다음 소희를 봤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음 소희에 대해서 짧게 나마 소감을 이야기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다음 소희에서 지목했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되짚고 있다. 다음 소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소희가 죽기 전과 후. 소희의 죽음에 감정적인 이입을 호소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 이면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기 일을 잘 하고 있는, 그래서 그것이 소희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진(배두나 역)은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는데, 그곳에 절대 악이 있고, 그 나쁜놈 때문에 소희가 죽게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 교장 선생님, 장학사, 콜 센터의 센터장, 그리고 학생들까지 모두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게 현실이라고 항변한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그 속에서 가장 약하고, 불행한 소희는 죽음을 택했다. 이제 다음 소희는 누가 될 것인가 영화는 제목으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세월호의 교훈

지하철 출근길에서 사람들의 결연한 표정을 보면, 다들 다음 소희는 누가 될 지 모르지만, 내가 되서는 안된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것 같다. 앞의 두 영화에서 확연히 들어난 우리 사회의 강한 특징인 '경쟁'에 세월호는 '각자도생'을 추가해줬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경험,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국민에게 각인시켜주었다. 나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남아있는 다음 세대에게 미안하고, 앞으로 홀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서러워서 울었다.

경쟁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그나마 완충재 역할을 하던 것이 초코파이가 나눠준 정情 문화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월호는 정없이 각자도생하라고 가르친다. 다음 소희에서 학교 선생님, 교장 선생님, 콜 센터장 그리고 친구들까지도 각자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기가 살아 남으려면 학교의 취업률이 중요하고, 자기가 살아남으려면 동료들 보다 자기 실적이 중요하고, 자기가 살아남으려면 친구보다 내 성적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각자도생은 그런 모든 행위를 정당화한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세상이 그런데 어떡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본 인면수심의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우리라도 살아야지. 영화는 각자도생이 살인까지 합리화시켜줄 때, 유토피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극한의 재난 상황을 가정했지만, 우리는 이미 다음 소희나 현실에서 인지했듯이 각자도생은 결코 존중받을 만한 생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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