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1984 - 조지오웰 감상문 2022. 6. 1. 21:12

조지오웰의 1984를 읽게 된 것은 김지윤 박사님의 독서 이벤트 때문이었다. 논술 세대라 지문에서 많이 접했던 소설이지만 정작 소설 전체를 읽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읽어보기로 했다. 읽어보니 이게 정말 1949년에 쓰여진 소설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현대와 이질감 없는 묘사가 놀라웠다. 그때 우리나라는 광복 이 후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는데, 작가는 그 혼란 이후에 올 디스토피아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주인공 오스틴의 직업은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당의 지시에 따라 역사를 수정하는 일이다. 전체주의 아래에서 절대적인 당의 권력은 현재 상황에 맞게 과거의 모든 기록을 수정한다. 불가능 할 것 같고, 말도 안되는 이 일이 오스틴의 직업이다. 이미 출판된 잡지를 모두 수정하거나 불태워버리고, 사전에서 단어 조차 없애버리는 말도 안되는 일을 통해서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여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통제를 합리화하고 세뇌시킨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 일까? 몇 해 전에 국민의 힘 김진태 의원이 주관한 행사에서 광주 항쟁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서 이뤄진 폭동이라고했다. 2019년에 나는 그 뉴스를 믿기 힘들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나라의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발표된 주장이고, 누군가는 그 권위를 내세우며 믿고 따른다. 만약, 같은 주장을 서울역 노숙인이 했다면 어땠을까? 국민의 힘이 야당이었기에 망정이지, 김진태가 대통령이었으면 어땠을까?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조지 오웰은 전체 주의 아래에서 벌어지는 만행 중 역사와 사실을 왜곡하여 시민들의 과거까지 지배하려는 것에 큰 경각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 기록마져 왜곡되고 조작될 때 우리는 미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나 광주가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망언은 모두 우리의 미래를 훔치려는 치밀하게 계산된 도둑질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줄리아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오스틴과 부패한 사회를 묘사하고 2부는 줄리아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둘의 사랑은 불륜이고 범죄이며 반란이기에 숨어서 비밀리에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둘의 첫 데이트는 인정이 드문 숲을 지나면 나오는 들판에서 시작된다. 아무런 감시와 통제가 없는 자연 가운데서 사랑을 나눈다. 우울한 회색도시를 벗어나서 밝은 햇살 아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소설을 통틀어 단 한번 주어지는 희망과 희열이었다. 철저히 통제되는 암울한 도시에서의 모습과 대비가 큰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순간 나도 아무도 없는 자연으로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왠만한 여행사 광고보다 더 큰 자극이 되었다.

줄리아는 여자 주인공이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성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까지 통제되고 억압받는 과정을 통해 전체주의의 통제해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도 체념하고 살아가는 그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게 느껴졌다. 바위 틈에서 꽃이 피듯 둘은 열렬히 사랑을 했고 그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을 거라 다짐하지만, 결국 그 사랑마저 지킬 수 없게 된다.

줄리아는 오스틴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다. 그런 줄리아는 비행기가 당에 의해서 개발 된 줄 알고, 지금 어느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지 통 관심이 없다. 이미 줄리아가 자랄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끊임 없는 전쟁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라이트형제가 발명했다는 사실을 수정한 것은 오스틴 본인이었지만 기록을 바꾼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던 오스틴은 줄리아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현재를 지배하는 당은 과거의 기록을 조작하고, 조작된 과거는 미래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일본의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독도가 일본땅인테 우리나라가 침탈했다고 알고 있을지도, 국민의 힘 지지 젊은 청년들은 북한에서 광주사태를 선동했다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3부

소설의 3부는 너무 잔인하다. 한 인간을 무너뜨리고 전체주의를 유지하는 잔혹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들이 묘사되는것 같은데, 어쩌면 이 소설은 그런 장면의 기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본 영화들보다 훨씬 더 먼저 쓰여졌고, 훨씬 더 유명하기에 많은 영화와 예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세하게 묘사되는 오스틴이 감옥에서 격게되는 고초는 상실감과 좌절, 두려움을 느끼게 해준다. 처절하게 그리고 무참히 무너지는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우리 각자는 모두 그렇게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체제에 반항하는 몇몇 나약한 하나를 통재함으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섬뜩했다. 이 소설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와 경종을 울리려고 소설로 쓰여졌지만, 이미 현실에서 러시아, 중국, 북한은 그러한 사회를 실현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쉽사리 작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소설이 다큐 같고, 예언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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