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감상문 2023. 5. 5. 14:33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읽었다. 처음에는 대놓고 여성 편력으로 바람을 피는 토마시를 바라 보며 테레자가 느끼는 감정인것 같았다. 로맨스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인가도 싶었다. 좀 더 읽다보니 사바나와 프란츠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민희와 홍상수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유부남과 연애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완전히 내주지 않는 젊은 여성 화가, 부인을 살뜰히 배려하면서도 외도를 통해 절절하게 사랑을 탐닉하는 대학 교수, 그리고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냉정하게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교수의 아내. 모두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 사비나는 갑자기 떠나고 프란츠는 방황하지만 부인은 당황하지 않는다. 사랑이 전투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부인을 두고 그는 다른 여학생과 동거를 시작한다. 베트남으로 반공행진을 하러 가지만 그 곳에서 허망하게 돌아와서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은 부인의 눈 앞에서 눈을 감게 된다. 저마다 자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서 회한에 빠진다. 금방이라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저 버릴것 같은데, 용케 그런 삶을 거부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삶의 발걸음을 옮긴다.

비슷한 맥락에서 토마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생기고 유능한 외과의사로 인기도 많고, 수 많은 여성에게 사랑을 받지만 삶이 결고 평탄하지만은 않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앞잡이 노릇을 한것도 아닌데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의 삶은 행복이나 불행, 선이나 악, 가벼움이나 무거움의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존재의 가벼움을 나에게 느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은 책들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요즘 친구와 가족과의 관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째든 나는 지금 내 존재의 가벼움을 절절히 느끼고 있고, 이 책은 그 느낌의 농도를 조금 더 높여놓았다.

입체적인 묘사와 섬세한 감정표현, 시간을 교체한 구성이 두꺼운 책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재미있다는 것외에도 너무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짧은 에피소드들은 쉽게 읽히지만 알랭 드 보통의 소설처럼 쉽게 후루룩 읽어 버리기엔 무리가 있다. 1984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부분도 많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 삶은 어떻게 쓰여질 수 있을까. 내가 살아왔던 날들의 사회 모습과 함께 소설을 끄적여보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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